말비계
도배나 타일 또는 전기 공사 같은 건축일을 하는 사람들에겐 천장이나 높은 곳의 일을 위해 작업 발판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인터넷에서 작업 발판을 찾아보면 2단, 3단 작업 발판이니 안전 발판 같은 것들도 찾아지지만, 우마나 우마 발판이 가장 잦게 눈에 띈다. 간혹 말비계도 뜬다. 더러는 한 발판을 소개하면서 우마/말비계와 같이 두 이름으로 소개하는 곳들도 있다.
먼저 안전 발판은 높은 데서 일하는 작업자의 안전한 작업을 위해 베푸는 발판을 말하는 데 주로 비계에 놓이는 작업 발판을 말한다. 작업 발판에는 말비계 말고도 통로로, 층계로 쓰이는 발판들이 죄 포함된다.
그럼 이제 말비계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온라인 건축용어사전에서 말비계를 찾으니 "2개의 같은 사다리를 상부에서 핀으로 결합시켜 개폐시킬 수 있도록 하여 발판 비계 역할을 하도록 된 비계."라고 나온다. 써진 걸로만 봐서는 얼른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쉽게 말하면 네 다리가 달린 긴 발판을 말한다. 모양만으로만 보자면 긴 걸상이라고 하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다만 말비계에 따라서는 다리가 사다리처럼 된 것도 있고 발판 위로 난간이 있는 것들도 있다. 설명이 어찌 됐든 말비계란 낱말 자체는 말과 비계가 합쳐져셔 만들어진 말로서 비계의 하나로 치는 발판임을 알 수 있다.
비계/상하이 골목에서 만난 대나무 비계, 중국 사람들은 이 대나무 비계가 쇠파이프 비계보다 가볍고 질기다고 주장한다.
고전번역원디비에서 몇 낱의 '비계'가 찾아지는데, 그 쓰임이 가장 분명한 글을 하나 소개한다. <면우집>에 실린 그 부분은 이렇다. "如今之欲伐高樹之枝者(여금지욕벌고수지지자), 必有飛階木以倚之(필유비계목이의지). 躡而據之(섭이거지). 然後方得便於用(연후방득편어용)." 이를 해석하면 "높은 나뭇가지를 베려 한다면 반드시 '비계'가 있어 그것을 밟고 의지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안전하게 도끼질을 할 수 있다."쯤 되겠다. 이 글을 통해 조선 시대의 비계가 분명 우리가 오늘날 공사장에서 보는 비계임을 알 수 있다. 이리 뼈대있는 우리말이 있으니 그저 '발판'이란 뜻에 지나지 않는 '아시바'를 비계 대용으로 쓰는 일은 사라졌으면 좋겠다.
말/목마
다음 '말'이다. 이 '말'도 굳이 타고자 한다면 올라 탈 수는 있겠으나 경마장이나 승마장에서 보는 그 말은 아니다. 말비계에서 말하는 말은 우리 말살이에서 거의 들어보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사전에 없는 말은 아니다. 우리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으면, "톱질을 하거나 먹줄을 그을 때 밑에 받치는 나무."라고 풀이가 되어 있다. 설명은 톱질과 먹줄 긋기에 한정돼 있지만, 실물을 보자면 양 끝에 다리가 달린 길쭉한 나무토막이다.이런 한 쌍의 말을 세로로 벌려놓고 그 위에 작업 대상을 가로로 걸쳐 올려 대패질이나 끌질 등의 작업을 하는 데에도 쓰는 연장이다. 여기에 넓은 판을 얹으면 타일도 자르는 둥 못할 작업이 없는 작업대가 된다. 지금이야 쇠나 플라스틱 제품도 나오지만 원래는 나무로 만들어 썼으니 목마라고도 부른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말'보다는 오히려 '목마'를 찾는 게 더 쉬움을 알게 될 테다. 건설 용어 목마를 우리 사전에서 찾으면 "집을 지을 때에 발돋움을 하기 위하여 쓰는 나무토막."이라 하고 있다. 조금은 어설픈 풀이가 아닐 수 없다.
이 '말'은 일본말로는 '우마(うま)'라 하고, 영어로는 '쏘호스(sawhorse)'라 한다. 우연인지 한국어의 말, 일본어의 우마, 그리고 영어의 호스는 같은 동물의 다른 이름들이다. '우마'를 일본의 건축용어집에서 찾으니 '자르기 받침대'라 불리는데 '위에 뭔가를 올리고 작업하는 다리 넷 달린 물건의 통칭.'이라고 나온다. 일한사전에선 '아래쪽이 벌어진 네 발 달린 발판(미장이 등이 씀)' 이란다. 또 '쏘호스'를 구글에 물어보니 "톱질용 널빤지 따위를 받치는 데 쓰는 다리 넷인 가로대"라 한다. 우리 영한사전에서 찾으면 "톱질 모탕"이라고 하는데 모탕은 도끼질이나 톱질 따위를 하려고 밑에 받치는 또는 밑에 까는 나무토막을 말한다. 즉 말로 불리게 되는 밑절미인 다리 넷이 없는 그냥 나무토막에 지나지 않으니 '쏘호스'의 설명으론 미흡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말'에 대한 우리 사전의 '받치는 나무'란 풀이도 매우 무성의한 풀이임이 분명하다.
이제 말비계를 다시 보자면, 네 다리가 달린 긴 발판이므로 '톱질 받침'으로서 '말'과는 좀 다르다. 물론 생김이 비슷하고 말비계 둘을 가져다 나무 토막이나 널빤지를 얹고 자르는 작업을 할 수도 있겠으나 말비계는 분명 '발판'으로 태어났다. 영어로는 이 말비계를 '벤치 래더(bench ladder)'라 부르니 분명 '쏘호스'와 구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 일본은 어떨까? 우리 일한사전이나 야후재팬의 일본어 사전에선 모두 우리네 말비계를 그냥 '우마'라 하지만 그들의 건축용어에 따르면 우리네 '말'은 저들의 '우마'이고 우리네 말비계는 '우마아시바'나 '다치우마'로 구별하고 있다. '다치우마'는 그 위에 사람이 올라선다는 데에 착안한 이름인 듯하고, '우마아시바'는 '말 + 발판'이니 우리네 '말비계'에 해당하는 말 만들기가 되겠다.
이런 자료를 뒤지던 중에 인터넷에서 "말비계는 생긴 모양 때문에 우마(牛馬)라고도 한다."는 어떤 사이트의 글을 만났다. 그럼 내 모르는 사이에 '우마(牛馬)'에 새로운 뜻이 생겼나 하는 생각에, 국어사전과 한자사전을 찾았으나 '소와 말'이란 뜻 말고는 어떤 뜻도 새로 보태지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즉 말과 말비계는 우리말이고 우마와 우마아시바는 일본말임을 어떤 식으로도 바꿀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일본말을 우리말로 둔갑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고 믿기에 밝혀둔다. |